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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a, Ani/만화가, 제작자

스튜디오 지브리( スタジオジブリ, STUDIO GHIBLI)

스튜디오 지브리 (STUDIO GHIBLI INC .)



설립 2005년 4월
외부 링크 http://www.ghibli.jp/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작을 주력 사업으로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단편 작품의 제작 및 실사 작품의 기획도 다루고있다. 또한 일본 국외의 애니메이션 공개및 DVD 발매 '열풍' 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하여 출판 사업, 심지어 음악 사업도 실시하고있다.


회사 법상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톱클래스를 모체로 변경한 설립 형식을 취하고있다. 1985 년 6 월 15 일 토쿠마 서점의 출자에 의해 실현했다. 따라서 현재에도 지브리 관련 서적의 대다수가 토쿠마 서점에서 간행되고 있다. 기업으로 시작하여 대표권 있는 사장은 출자자 측의 토쿠마 서점 사장의 도쿠마 야스시가 취임했다. 실질적인 경영 재무 책임자는 이사였던 하라 토오루가 취임했다. 처음에는 작품마다 직원을 모아 완성과 함께 해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있었지만, 후에 인재 육성을 위해 애니메이터의 월급을 고정 급제하는등 고품질 안정한 작품 만들기에 힘썼다.


1996년에 월트 디즈니 컴퍼니 ( WDC )및 일본 법인의 월트 디즈니 재팬 ( WDCJ )사이에 비디오 소프트웨어출시 및 해외에서의 지브리 작품 배급과 관련된 사업 제휴를 체결됨에 따라 해외에서는 기본적으로 ( 작품 마다 지역이 다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또는 WDC 자회사 미라 맥스가 배급 하고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홈 엔터테인먼트가 비디오 출시를 담당 한다. 2008 년에는 WDCJ 사장 호시노 코우지가 창업 멤버 의 스즈키 토시오의 지명에 의해 사장으로 취임 하고있다.


극장 작품 전문 스튜디오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TV 작품의 동영상도 하청 받고 있다.




이름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칭은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 ghibli )에서 유래 하고 있으며, 제이차 세계 대전중 이탈리아 Caproni 사의 정찰 / 폭격기의 이름 이기도하다 ( CAPRONI Ca309 GHIBLI ). 붉은 돼지에서 엔진에 GHIBLI의 이름도 있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깊은 생각이 엿보인다. 발음이 "지브리"가되었지만, '블리'가 원어에 가까운 발음 이다( 이태리어).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크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캐릭터 토토로가 디자인되어 있다. 



약력
1985 년 설립.


1991 년 경영 방침의 대립에서 스즈키 토시오가 취임.


1992 년 8월 6일, 히가시 코가 네이역 근처( 코가 네이시 카지노 도시 )로 이전


1997 년 6월 경영악화 모기업의 토쿠마 서점에 흡수된 회사 스튜디오 지브리는 해산. 같은 해 '원령 공주' 완성후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를 퇴사.


1999 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소장으로 복귀.


2004 년 토쿠마 서점 스튜디오 지브리 사업부를 스튜디오 지브리에 분할.


2005 년 4월 조직 형태를 유한 회사에서 주식회사로 변경. 토쿠마 서점 산하 떨어져 독립적, 스즈키 토시오가 대표 이사 사장으로 , 미야자키 하야오 이사로 취임.


2008 년 2월, 스즈키 토시오가 대표 이사를 퇴임 하고 후임으로 월트 디즈니 재팬 회장 호시노 코우지가 취임.


2009 년 4 월 도요타 자동차 본사에서 새로운 스튜디오로 '서쪽 지브리 (西ジブリ) '를 개설.


2010 년 8 월, 서지브리을 종료했다.




스튜디오 지브리
'천공의 성 라퓨타' (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 · 각본 · 감독 )


'이웃집 토토로' (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 · 각본 · 감독 )


'반딧불의 묘' (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 감독 )


스튜디오 카지노

주식회사 스튜디오 지브리 의 두 번째 레이블 로 설립 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실사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애니메이션 분야에도 진출 하고있다.


'축제일' ( 안노 히데아키 감독 )

'사토라레' ( 모토히로 카츠유키 감독 )

'휴대용 공항' ( 모모세 요시유키 감독 )

'space station No.9' ( 모모세 요시유키 감독 )

'하늘을 나는 도시 계획' ( 모모세 요시유키 감독 )


스튜디오 블리

스튜디오 블리( 지브리 )의 작품 '기브리즈 episode2 (GHIBLIES episode2)' 에 등장하는 가공의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스튜디오 블리의 마크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크와 거의 같은 디자인이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노나카 군'이 그려져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딧 에는 '제작 스튜디오 블리'로 표기 되어 있다.


'기브리즈 episode2' ( 모모세 요시유키 감독 )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라이브러리
2007년에 주식회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재단법인 도쿠마 기념 애니메이션 문화 재단에 의해 설립된 레이블. 쿠마 기념 애니메이션 문화 재단 산하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타사가 제작 한 영화의 공개 및 DVD를 판매하고 있다. 주로 일본 국외의 애니메이션을 담당 하고 있으며,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추천 등에 따라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작품을 선정 하고있다.


'봄의 각성' ( 알렉산더 페트로프 각본 · 감독 )

'아주르 와 아스마르 '(Azur & Asmar: The Princes' Quest)' ( 미셸 오슬로 원작 · 각본 · 감독 )

'눈의 여왕(Snow Queen)' ( 레흐 아타마노후 감독 )




일본 역대 지브리 작품 소득 순위
1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2001년 304억엔 2350 만명


2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년 196 억엔 1500 만명


3 원령 공주 

1997 년 113 억엔 193 억엔 1420 만명


4 벼랑 위의 포뇨

2008 년 155 억엔 1200 만명


5 마루 밑 아리에티 

2010 년 92.5 억엔 750 만명


6 게드 전기

2006 년 76.5 억엔 588 만명


7 고양이의 보은 / 기 브리즈 episode2

2002 년 64.6 억엔 550 만명


8 코쿠 리코 언덕에서 

2011 년 44.6 억엔 355 만명


9 붉은 돼지

1992 년 28 억엔 304 만명


10 헤세이 너구리 전투 폼포코

1994 년 26.5 억엔 325 만명


11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년 21.5 억엔 264 만명


12 추억은 방울 방울 

1991 년 18.7 억엔 216 만명


13 귀를 기울이면 / On Your Mark

1995 년 18.5 억엔 208 만명


14 이웃집 야마다 군

1999 년 7.9 억엔 115 만명


15 이웃집 토토로 / 반딧불의 묘 

1988 년 5.9 억 엔 80 만명


16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년 5.8 억 엔 77 만명


바다가 들린다 ... 시청률 17.4 %




후계자의 육성
원래 스튜디오 지브리는 영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상업적 성공을 계기로 설립된 프로덕션 이며, 처음에는 이 작품 제작의 중심 인물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 하는 극장 애니메이션 장편 제작을 중심 업무로하고 있었다. 따라서 회사는 항상 미야자키와 타카하타를 정점으로 돌고있는 일면 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당시 미야자키 · 타카하타 양 감독과 이미 베테랑 이며, 특히 국민적 영상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히고 있었던 미야자키 후계자의 확보는 지브리의 경영에 큰 장기적인 과제의 하나로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995 년 7월 15일 , 콘도감독 작품 ;귀를 기울이면'이 공개. 콘도는 지브리의 설립 이전부터 수많은 미야자키 · 타카하타 작품을 지원하고, 또한 당시의 지브리 작화팀의 대표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애니메이터로 이 작품의 성공으로 미야자키 · 타카하타의 후계자로 인정되어 지브리의 내외 에서 큰 기대를 모으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콘도 는 1998년 1월 47 세의 나이에 병사하고 만다.


이후 지브리는 장편 작품으로 미야자키와 타카하타의 후임을 담당할 역량을 인정받은 감독 후보로 조직의 인재 육성의 난항을 겪었다. 또한 그때까지 포함하여 육성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지금 까지 주로 젊은 중견 세대에 주목한 크리에이터를 여러 명의 감독 후보로 초청해 제작 작업에 종사 하고 있지만, 지브리의 기업 문화에 익숙해 하지 않고 하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다. 과거에는 '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은 토에이 동화에서 출향하고 있던 호소 다마모루의 하차등이 전해지고있다.




이러한 상황을 안노 히데아키는 1996년 시점에서 이미 지브리의 환경에서는 후계자 성장은 없다고 지적 하고 지브리는 미야자키와 타카하타 2명을 위한 스튜디오 이며 인재가 성장 할리가 없다고 발언 하고있다.


콘도 사후의 2001 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의 작화 감독을한 안도 마사시 또한 "어떤 의미에서 지브리를 깨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브리의 방법론을 말했다. 실제로 제작중 지브리 외부에서 애니메이터를 적극적으로 수용 했다.


스즈키는 2006 년 <게드 전기>의 제작에 있어서 당시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으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제작 작업의 미야자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을 기용하는 인사를 실시했다.


사실상 '후계자 육성'한 방법으로 기용한 것이라고 인정하고있다. 그러나 이 고로 감독 기용 내용은 미야자키와 스즈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2010 년 말에 스즈키는 질의 응답 에서 "( 미야자키는 ) 아직도 " 게드 전기 "를 고로에게 찍게한것 대한 나의 판단을 용서하지 않고 있다 "라고 밝히고있다.


한편, 스즈키 는 경영 재건 중이던 토쿠마 서점의 산하에서 2005년 지브리가 독립 했을때의 자본금이 1000 만엔이었던것이 미야자키, 다카하타, 스즈키의 3 명으로 기여할 금액이었기 때문에 미야자키와 타카하타 2명이 은퇴하면 지브리도 끝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