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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a, Ani/만화, 애니메이션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ー)

내일의 죠  あしたのジョー



내일의 죠

원작 원안 타카모리 아사오
작화 치바 테츠야
출판사 코단샤
게재지 주간 소년 매거진
레이블 고단샤 코믹스
발표 1968 년 1 월 1 일 호 - 1973 년 5 월 13 일호
권수 전20권


애니메이션 :
내일의 죠 / 내일의 죠 2
총 감독 데자키 오사무
방송국 후지 TV
방송 기간 1970년 4월 1일 - 1971년 9월 29일
1980년 10월 13일 - 1981년 8월 31일


국내에서도 방영되었던 내일의죠, 우리나라에서는 허리케인 죠로 MBC에서 방영되었다. 김종서가 주제가를 부르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케이블 방송으로 종영방송은 되었어서도 MBC에서는 종영되지 못했다. 이유는 죠의 상대가 외국인이었지만 실제 애니메이션에서는 한국인으로 죠가 승리한다. 실제 방영중에는 한국인으로 나오지 않지만 이때 한국이 일본에게 축구에 패배했으며 이러한 분노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다른 분노를 살것이라 예상하며 방영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후 케이블에서나 만화로 인기를 얻을수 있었으며 죠를 담당했던 국내 성우도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를 죠로 뽑았을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만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내일의 죠"는 타카모리 아사오원작 , 치바 테츠야에 의한 권투를 테마로한 만화이다.코단샤의 "주간 소년 매거진" 에 1968년 1월 1일호(발매일은 1967년 부터 1973년 5월 13일호 걸쳐 연재 되었다.


누계 발행부수 는 2000만부. 연재중인 사회적 반향이 커서 조 라이벌인 리키이시가 죽었을때에 실제로 장례식을했다. 또한 일본에서 키치죠우 이치로우를 비롯한 실제 권투계에도 큰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반향의 크기로부터 "최대의 히트 만화"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내일의 죠 스토리



도쿄의 도야 거리에 한 소년이 나타난다. 야부키 죠라고 자칭하는 그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전직 복서 단페이는 죠의 움직임에서 복싱 센스를 발견하고 최고의 복서로 만들어주려 분투 한다. 그러나 죠는 도야거리 의 아이들을 데리고 범죄를 벌여 경찰에 체포되어 소년원으로 보내져버린다.


어느날 , 소년원에 단페이에게서 엽서가 도착한다. 그 내용은 레프트잽에서시작 복싱 기술 강의였다. 시간 과 체력을 주체 못했던 조는 그의 조언에 따라 권투연습에 몸을 맡기게 되고, 결국 자신의 펀치가 지금 까지 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 되어가는 것을 실감한다. 들국화섬 토코메 소년원에서 라이벌 리키이시 와 의 숙명의 만남을 거쳐 죠는 본격적으로 복싱의 길로 들어서게된다.


죠는 히라가나와의 대전을 넘어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걸고 최강의 복서 호세와의 싸움에 도전한다. 죠는 허무하게 판정패를 당해 패배해서 링을 떠난다. 재 처럼 하얗게지친 죠. 그러나 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다.




내일의 죠 에피소드



제목은 원작자가 이노우에 야스시 의 "내일 오는 사람"을 읽고 착안을 얻었다.
리키이시의 체중감소 에피소드는 지바와 카지와라 설정 확인 엇갈림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조와 리키이시 의 첫대면 장면이 전달된 원고의 문장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치바는 리키이시의 신장을 죠 보다 머리 하나높게 그려 버렸다. 발행된 지면을 보고 그것을 알았던 카지 와라의 신장 차이는 두 사람이 동일한 체급으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어 나중에 이야기의 앞뒤를 맞추기 위해 "이제 죽지 않으면 거짓말 "이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과도한 체중 감소를 리키이시에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리키이시를 어떻게 할것인가에 카지는 리키이시를 죽이고 싶지만 치바는 살려 두고 싶다고하는것에 논쟁이 되었다. 카지와라가 "리키이시는 절대 죽여라!"라고 발언. 논쟁의 장이 되었던 신주쿠의 바의 바텐더가 카지와라의 발언을 듣고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결국 치바를 설득, 리키이시는 경기후 사망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치바는 사이토 타카오의 인터뷰에 대해 "리키이시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나와 있었다 "고 말해 여기서 죽여야 "이후 리키이시에 무엇을 시켜도 , 그것은 타락 밖에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간 소년 매거진"의 1970년 제 9호 ( 2월 22일호)에서 리키이시가 경기후 사망 하자 1970년 3월 24일에는 테라 야마 슈지의 요청에 분쿄구의 코단샤 강당에 라고 리키이시의 장례식이 열린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만화 캐릭터의 장례식으로 말해지는 것이 많지만, 장례식 자체는 애니메이션판의 주제가를 노래하고 있던 비토우 이사오가 라이브 형식으로 노래하기 시작, 리키이전에서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던것을 계기로한 팬 이벤트적인 요소가 강했던 것이다.


순수하게 '권투 만화'로 볼때 매우 리얼리티가있는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없는 면도 많이 있다. 극중에서 죠가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던 크로스 카운터는 상대의 펀치를 맞으면서 더 타격을주는 기술 이었지만 실제 크로스 카운터는 상대의 공격을 슬리핑등에서 주고 받으면서 동시에 공격을 가하는 이른바 공방 일치의 고등 기술이다. 또한 "카운터 펀치는 보통 펀치의 2배 이상의 위력을 자랑하는"이라는 이론은 반드시 잘못되지 않았지만, 크로스 카운터는 4배 , 크로스 카운터에서 더블 크로스는 8 배, 크로스 카운터에서 트리플 크로스 는 12배의 파괴력을 갖는다는 부분은 완전히 카지와라의 창작이며 근거가 없다.